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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감상문

언어의 온도 - 이기주

by 차근차근step-by-step 2024. 8. 12.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이기도 한다.

 

작가는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고 말한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살아움직이는 언어의 힘을 책의 마지막까지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아래 인용글은 인상 깊어 따로 표시를 해 두었던 부분인데,

책 뒤쪽 표지에도 적혀있었다.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새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깨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 본문 122쪽에서 -

 

사람, 사랑, 삶, 이에 대한 정의들은 단순한 설명부터 복잡한 설명까지 다양하다.

작가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삶이 아닐까, 라고 반문한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는 모두 닮았다.

사람에서 자음하나만 바꾸면 사랑으로,

사람에서 모음하나만 빼면 삶이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다가 '삶'으로 오타를 낸 적도 꽤 많은 것 같다.

사랑 없는 삶은 없고,

사랑 없는 관계는 없다.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사랑이 부끄럼을 많이 타는지,

전보다 많이 줄어든 듯하다.

 

초등학교 때 작은 동네 주택에 살았던 나는,

이웃간의 정겨움을 기억한다.

한때 복고풍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응팔의 드라마에서 봤던 광경들이, 내겐 익숙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던 '낭만'을 느끼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이후로 성인이 된 지금은,

나도, 때로는 사람들이 말하는 '낭만'을 그리워한다.

'그땐 그랬지'하며 추억에 잠기는 일도 많다.

그때의 사랑이 그립다.

사랑이 자신감 있던 시절, 

요즘 세상도, 사랑이 부끄럼을 타지 않았으면.

사랑이 넘쳐 흘러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흘러 넘친 사랑의 수혜자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우린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러니 가끔은 한 번도 던져보지 않은 물음을 스스로 내던지는 방식으로 내면의 민낯을 살펴야 한다.
'나'를 향한 질문이 매번 사람의 해법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삶의 후회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다 보니 그런 듯하다.
- 본문 259쪽에서 -

 

아무 생각없이 살거나, 반대로 너무 많은 생각들에 시달려 살면,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기간이 지속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 가장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솔직함'이다.

현재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현상태를 바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감정의 현주소를 알아야한다.

 

한동안 나는, 나 스스로에게 '나는 내 감정을 모르겠어.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해?'

라는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가 있었다.

혹시나, 지금 이런 상태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그리고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무력감은 더 큰 무력감을 불러오니까.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내 상태를 인정하기 싫어했다.

인정하더라도 그대로 포기해버렸다. '어차피 안될텐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힘들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생각을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그것도 힘들면, 일단 나가서 운동부터 하자.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칭찬과 지적이 적절히 혼재된 면담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너처럼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하셨다.
난 가능성이란 낱말이 참 듣기 좋았다. 
내게 그 표현은 "아직 널 믿는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당당하게 교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을.
- 본문 283쪽에서 -

 

내 관심사가 교육에 있어서 그런지, 어떤 책을 읽든 포커스가 맞춰지는 부분이 있다.

위 글도 그랬다.

가능성. 말 그대로 끝없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저 글을 읽으면서, '가능성'을 읽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졌다.

아이들에게서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가능성'이라는 믿음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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